세상을 향한 글쓴이의 논평

노무현은 과연 애처가/페미, 탈권위주의자, 김대중의 친구였을까?

성령의 오른말씀 2024. 10. 16. 17:29

(초안)

때는 바야흐로 2013년.
나는 당시 한창 트위터에서 열심히 활동 중이었으며, 페미니즘 사상에 흠뻑 취해 있었다.
즉, 경제나 외교 분야엔 거의 안중에도 없었기 때문에 그저 막연하게 미국과 일본은 우리의 주적이고, 북한엔 무조건 퍼줘야 하고, 자본가와 기업은 절대 악이라는 납작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노무현이란 정치인은 당연히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내 가려운 곳들을 적재적소에 찾아서 시원시원하게 긁어주는 안성맞춤형 정치인이었다.
더군다나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라면 '대통령 후보'라는 야망도 과감히 내던져 버릴 수 있는 애처가에 페미니스트라니!
그뿐인가?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구수하게 부르고, 퇴임 후엔 썰매를 타다 뒤집어져서 머쓱해하는 모습 등등...
노무현의 그 모습들은 정말 소탈하고 친근한 탈권위주의자 그 자체였다.
그의 매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앞서 말했듯, 그는 경남 김해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란 사람으로서 경상도 사나이 그 자체였다.
그런 사람이 전라도를 텃밭으로 삼는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 스스로 김대중의 친구가 되겠다고 하다니!
노무현은 스스로 경상도 사람들의 기대를 등지고 가시밭길을 걷겠다고 자처한 셈이었다.
이런 노무현의 매력을 누가 감히 거부할 수 있으랴!
그런데 그 당시에 그를 강하게 거부하는 사람들이 놀랍게도 존재했었다.
그들이 바로 김대중 지지자들이었다.
그들은 트위터에서 노무현에 대한 실상을 알렸고, 그들의 트윗들이 내 트친들에 의해서 리트윗 되면서 내 타임라인으로 흘러들어왔다.
나는 그 내용들을 처음 접했을 때 해머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들의 주장은 근거도 탄탄했고 논리적이었기에 나로선 뭐라 할 말도 없었고, 오히려 내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뭐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내 타임라인에서 트친들의 여론은 극과 극으로 갈리었다.
그들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지지를 철회하는 사람들이 있는 가 하면, 딱히 반박할 근거도 없으면서 감정적으로 배격하며 무조건 노무현을 실드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그걸 보면서 그동안 자신이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인정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체감했다.
그리고 노무현이 감성팔이로 지금껏 쌓아온 이미지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본 포스팅에선 노무현이 어떤 식으로 국민들의 감성에 파고들어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선점했고, 그의 실체는 어떠했는지 여러 근거 자료들을 들어서 파헤쳐보도록 하겠다.




노무현은 어떻게 사람들에게
자신을 애처가, 페미니스트로
기억되게 했을 까?


명연설로 마음을 뒤흔들어 시야를 가려라

https://youtube.com/shorts/FPItR629DfI?si=AbV70pB9CMx1XSEv

장인어른의 좌익활동 논란으로 궁지에 몰린 노무현은 2002년 4월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장에서 "이런 아내를 그대로 사랑하면 대통령 자격 없다는 것입니까!"라는 그 말 한마디로 노무현의 실상(가정폭력)을 보지 못하게 했다.

♤ 한 유투버의 해석
https://youtube.com/shorts/qma-BXQt8lU?si=tcQOmLaZdru9Plks



'철학'이라는 단어로 본질을 흐려라

https://youtube.com/shorts/WB7TPdT0LRk?si=iNi8R1-ABxXwJ8PPPP

노무현이 여성부의 명칭을 여성가족부로 변경하자, 사람들이 그 명칭 변경에 의문을 표했고, 그는 철학적 근거 때문이라고 둘러댔다.
그럼 한국사람들은 '철학'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말의 앞뒤를 따져보지 않고 바로 납득하는 경향이 있다.

※ 참고: 나도 철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본질이 없거나 논리가 맞지 않는 철학은 죽은 철학이다.
모든 철학엔 본질이 있고, 타당한 논리 체계가 있어야 한다.
대표적인 예시로, 래디컬 페미니즘도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래디컬 페미들이 "하나님도 남자고, 예수님도 남자고, 김대중도 남자라서 다 배척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걸 보면, 우리는 그들의 철학에 논리와 근거가 아주 빈약하단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노무현이
그의 자서전에 자백한 내용은?

》노무현, 자신의 자서전에서 상습적인 가정폭력 행위를 자백하다

그러나 나는 결혼을 할 때까지도 남성 우위의 생각이나 여성에 대한 경계심을 버린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양숙이만 ‘특별히 좋은’ 여자이거나 ‘순종하는’ 또는 ‘내 손아귀에 들어올’ 여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해 놓고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말을 명령조나 억압조로 함부로 하면 그걸 따지고 들 뿐만 아니라, 심하면 우리 집의 가풍을 비난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내 개인의 습관까지도 공격의 대상으로 삼곤 했다. 나는 우격다짐을 해서라도 기를 꺾어 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눈을 부라리기도 했고 고함을 치기도 했다. 그러니 작은 말다툼도 걸핏하면 싸움으로 비화되기 일쑤였다.
나는 별 생각을 다 했다. ‘아, 속았구나’ 싶기도 했고, 나도 잘못하다가는 큰형님처럼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견딜 수 없는 초조감과 불안감에 나는 급기야 아내에게 손찌검까지 하는 남편이 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내로서는 매우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결혼할 당시 우리 집은 농사가 많았다. 형님 내외는 직장 따라서 부산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시부모 모시고 농사 수발을 하는 일은 아내의 몫이었다. 그러니 아이 키우랴, 집 청소하랴 음식을 장만해서 들에 갖다주랴, 그 고생이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공부한답시고 모내기하는 날에도 내다보지도 않았으니…….
그러나 나는 아내가 조금이라도 불평을 하면 소리를 질러 대었고, 그 말에 심하게 반발을 하면 다시 손을 올려붙였던 것이다. 정말 기억하기에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알라딘 eBook <여보, 나 좀 도와줘 : 노무현 고백 에세이-노무현 전집1 > (노무현 지음) 중 p.159, 160에서
고시에 합격하고 나서 연수원에 다니던 시절, 나는 아내를 다루는(?) 일을 무척이나 힘들게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나보다 나이가 어린 연수원 동료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 친구들이 보기에는 나야말로 아내 위에 군림하는 남편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어느 날 갓 결혼한 친구들과 함께 소주병을 들고 수유리 뒷산에 올라갔던 일이 있었다. 친구들 중 하나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어떻게 노 형은 형수님을 그렇게 꽉 잡고 삽니까? 비결이 뭡니까?
나는 그 자리에서 무슨 인생의 대선배나 되는 듯이 대답해 주었다.
조져야 돼. 밥상 좀 들어 달라고 하면 밥상 엎어 버리고, 이불 개라고 하면 물 젖은 발로 이불을 질겅질겅 밟아 버리는 거야. 그렇게 해야 꽉 잡고 살 수 있는 거야.
물론 농담이었지만, 전혀 거짓말도 아니었다. 그것이 나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이었다.

-알라딘 eBook <여보, 나 좀 도와줘 : 노무현 고백 에세이-노무현 전집1 > (노무현 지음) 중 p.161에서


》노무현, 자신의 자서전에서 저열한 여성관을 그대로 서술하다

1983년경, 부산에서 운동권 청년들이 만든 공해문제연구소에 내 사무실의 일부를 내주고 있을 때였다. 그때 나는 청년들과 그곳에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다. 어느 날 그렇게 이야기를 하던 중에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나는 대뜸 이렇게 농담을 했다.
그래도 남자한테는 여자가 서너 명은 항상 있어야지. 한 명은 가정용, 또 한 명은 함께 춤을 출 수 있는 뺑뺑이용, 그리고 또 한 명은 인생과 예술을 논하는 오솔길용, 이 정도는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
순간 청년들의 얼굴색이 갑자기 변해 버렸다.
“아니, 변호사님이 어떻게 그런 말씀을 다 하십니까?”

-알라딘 eBook <여보, 나 좀 도와줘 : 노무현 고백 에세이-노무현 전집1 > (노무현 지음) 중 p.162에서
그런데 요즈음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또 새로운 변화를 느낀다. 무슨 얘기 끝에 남편이 음식도 ‘해 주고’ 빨래도 ‘해 준다’고 이야기했더니, ‘해 준다’는 생각이 틀렸단다. 남의 일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일을 하는 거란다. 어느 나라에서 남성 노동자에게 ‘육아 휴가’를 준다는 말을 듣고 별 싱거운 일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젊은 친구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요즘 말로 장난이 아니구나 싶다.

-알라딘 eBook <여보, 나 좀 도와줘 : 노무현 고백 에세이-노무현 전집1 > (노무현 지음) 중 p.164에서


》노무현, 자신의 자서전에서 상습적인 성폭력 행위를 자백하다

맨날 모였다 하면 화투요, 입만 열었다 하면 욕이다. 옛날 누굴 두들겨 팬 이야기, 여자 겁탈한 이야기, 일 저지르고 도망친 일 등등……. 모여 앉아 궁리하는 거라고는 어떻게 하면 공사장의 모터나 철근, 자재 같은 걸 빼내 나가 팔아먹을까 하는 것들이다.
한번은 일터로 나가는 길에 지나가는 아주머니들에게 음담패설로 희롱을 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 아주머니들도 호락호락하지가 않아 욕만 됫박으로 얻어먹고 코가 납작해져 버린 일이 있었다.
분풀이할 궁리 끝에 다음 날 아주머니들이 지나가고 있는 길거리를 향해 나란히 줄지어 서서는 바지춤을 내렸다. 그리고 단체로 오줌을 갈겨 댔다. 밥 먹고 생각하는 것이라곤 그런 것뿐이었다.
그 뒤 군대를 갔는데 군복을 입혀 놓으니 또 그 지경이고, 제대 후 예비군복을 입혀 놓아도 마찬가지였다. 의사건 변호사건 예비군 훈련장에만 가면 어떻게 농땡이를 부릴까 궁리만 한다. 아무 길거리에서나 오줌을 누고, 끝나면 그냥 집에 가도 될 것을 술집에 몰려가 한잔씩 해야만 하고, 그러다 지나가는 여자나 희롱하고……. 옷과 환경이 사람을 지배하는 모양이다.

-알라딘 eBook <여보, 나 좀 도와줘 : 노무현 고백 에세이-노무현 전집1 > (노무현 지음) 중 237, 238에서




노무현은 어떻게 사람들에게
자신을 탈권위주의자로
어필할 수 있었을 까?


예능 프로를 적극 활용하라

https://youtube.com/shorts/rzvxFbQrEBk?si=Y38NEMEGxnoLQsZn

우리와 다를 게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어필하기에는 역시 예능 프로만 한게 없다는 걸 노무현은 잘 알고 있었다.
아이돌 가수들도 신비주의 컨셉을 벗고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예능 프로에 출연해서 자신의 사적인 공간을 공개하니깐 말이다.



아이들을 적극 활용하라

https://youtube.com/shorts/aqhoBrB6SDc?si=2PiIVBSOBP4xMSiU

대중은 '아이'에게 경계를 쉽게 허물곤 한다.
노무현이 이를 정확히 캐치하곤 적극 활용했던 것.
거기다 본인도 아이들 만큼이나 때묻지 않은 멘트까지 날리면, 그보다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노무현이 권위적이라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노무현 정부의 시위대 과잉진압으로 두 농민이 사망하다

https://naver.me/xDJmBocE

"켜켜이 분노가 쌓여가는 농심이 두렵지 않은가?"

[프레시안 김경락/기자]   지난달 15일 쌀 개방을 막아보겠다며 새벽밥 말아먹고 집을 나선 두 농민, 전용철(44) 홍덕표(68) 씨가 시위 현장에서 ...

n.news.naver.com


♤ 당시 노무현 정권의 시위대 과잉진압을 보여주는 영상

원본 출처: https://m.blog.naver.com/tongyindong/222997110300, [VLLO]어플을 활용하여 2차 가공하였습니다.




노무현은 어떻게
자신을 김대중의 친구로
어필할 수 있었을까?


"우리가 남이가" 비판해서 차별화 어필

원본 영상: https://youtu.be/O0DICCBvO00?si=X8gtSmJbVCyDRhrF, [Inshot]어플을 활용하여 2차 가공하였습니다.

차별화 전략은 지금도 많이 쓰는 마케팅 기법이다.
경상도사람이 "우리가 남이가"를 비판함으로써 얻게 되는 신뢰성은 생각보다 견고하고, 그 개성은 상상 이상으로 독보적이다.

※ 참고: 차별화 전략이 무조건 나쁘다는 게 아니라, 노무현이 자신은 다른 경상도사람들과는 다르게 믿을 만한 사람으로 어필하는 데에 차별화 전략을 악용했다는 것이다.




전형적으로 앞에서 아부하기

https://youtu.be/7AA63mksKHY?si=xMZcqmf2LgVT76dR

간혹 전형적인 게 가장 정석적일 때가 있다.
진부할지라도, 사람은 여전히 자신에 대해서 입에 발린 소리 하는 사람에게 솔깃하게 되어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속담이 괜히 있는게 아니니깐 말이다.



김대중과 그의 지지자들은
그렇게 생각할까?

》노무현, 선거 유세 중 [우리가 남이가] 어필하다
https://youtube.com/shorts/wr47shceKWg?si=G3IqkQCPQfimF3Nc


》김대중 세력을 향해 무리하게 대북송금특검을 밀어붙이다

원본 출처: https://youtu.be/lcbFR8DllDk?si=-xF-moHS57aqUx2e, [AI Photo Enhancer]어플과 [Lightroom]어플]과 [Canva]어플을 활용하여 2차 가공하였습니다.


♤ 대북송금특검 사건 배경 및 경과


2002년 9월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이 최초로 현대상선의 대북 비밀송금 의혹을 제기했다.
김대중은 이에 대국민 성명을 발표해서 해명했지만, 정치권의 수사 요구는 거세지기만 했다.

https://naver.me/FlJcIDdW

김대중 대통령 대북송금 대국민성명 전문

[edaily 조용만기자] 김대중 대통령 대북송금 대국민성명 전문퇴임을 앞두고 제가 가장 갈망한 것은 원만하게 임기를 마치고 물러가는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현대상선의 대북송금 문제를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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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는 급기야 '검찰수사유보'라는 강경책을 내놓았지만, 주변의 의혹은 갈수록 증폭되기만 했다.

2003년 1월 말, 감사원은 '1,760억 원은 현대 측의 운영자금으로 사용됐고, 나머지 2,240억 원은 북한 정부 측에 조달된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즉, 현대상선 측이 산업은행에서 대출받은 4,000억 원 중에서 사용처가 불분명한 2,240억 원은 북한 정부 측으로 송금된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인 것이다.

이는 결국 대북송금 의혹을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점을 시사한다.
당초 청와대와 노무현 당선자 측은 관련자들이 국회에 출석해 해명을 하는 것으로 대북송금 의혹을 마무리하려고 했다.

허나, 한나라당과 자유민주연합은 즉시 특검을 진행해야 한다고 밀어붙였다.
국회 법사위는 2월 19일 오후 전체회의를 열었고, 한나라당이 제출한 관련 특검법안을 민주당 의원들이 전원 불참한 상태에서 강행 처리했다.
2월 26일, 국회는 민주당 의원 전원이 참석하지 않은 상황에서 본 회의를 열어 한나라당의 대북송금 사건 특검 법안 처리를 강행했고, 찬성표로 158을 득표하여 통과시켰다(반대표 1, 기권표 3).

2003년 3월 초, 민주당 내부에서는 특검 자체는 실시하되 한나라당에게 재협상을 시도하여 특검법안을 수정하고, 대통령의 조건부 거부권 시사함으로써 야권을 압박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2003년 3월 14일, 민주당은 수정을 전제로 특검법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만약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수정안을 발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노무현은 돌연 입장을 바꿔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면서 "민주당은 일단 특검법 공포를 거부해 주면 여야협의를 거쳐 새로 제정하자는 것이었고 한나라당은 일단 수용해 공포하면 다시 법률개정해서 조사범위에 한계를 정하겠다는 뜻이었다"며 "결국 순서가 문제일 뿐, 특검을 하되 조사 범위에 제한을 두자는 것인데, 양당지도부가 뜻이 같아서 일단 공포하기로 했다"라고 설명했다.

https://naver.me/x67IUU7A

[일반] 盧 대통령,특검법 원안대로 공포(상보)

[머니투데이] 노무현 대통령은 14일 대북송금 의혹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원안대로 공포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갖고 &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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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측에서는 결국 특검이 여야 합의로 수정되는 선에서 실시되었으니 만족할 만한 수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특검법 실시는 당연히 민주당 내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반발이 일어났다.
특히 친DJ 또는 민주당 내 호남중진세력은 강하게 반발했고, 이후 노무현발 열린우리당이 민주당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게 되었다.
김대중은 이 일을 계기로 건강이 심히 악화되어 병원에 드러누웠으며, 그의 측근들은 화병이 난 것이라며 매우 안타까워했다.
즉, 당시 노무현이 대북송금특검을 수용함으로써 친노세력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친 DJ세력과 분열의 틈이 생겨버렸다.
그 결정적인 시사점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 바로 무소속이 된 천정배가 2015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뒤 호남 중심의 새로운 정당을 만들겠다고 선언했을 때이다.
그때 노무현의 특검 수용이 천정배의 "호남인들이 친노와 화합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의 근거로 쓰였기 때문이다.

https://naver.me/xWTdi1Uk

노무현의 '대북 특검' 수용은 직무유기

[김기협의 냉전 이후]<63> 盧 정부, 대북송금 특검으로 잃은 것 [김기협 역사학자]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주체는 물론 남한과 북한 정부였지만, ...

n.news.naver.com


당시에 노무현이 그 같은 결정을 내렸던 데엔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아래의 기사 내용과 김갑수 역사평론가의 분석녹취록을 참고해 주길 바란다.


》문재인, "대북송금 DJ 해명, 충분치 않다"
https://shindonga.donga.com/politics/article/all/13/102345/1

“특검 결과 불법 드러나면 DJ도 책임져야”|신동아

shindonga.donga.com



》김대중의 말을 왜곡한 문재인

원본 출처: https://youtu.be/lcbFR8DllDk?si=kOe6sN6EUbWN5MeH, [Inshot]어플로 2차 가공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노무현은 어째서 문재인의 입김에 놀아났던 것일까?
사실 노무현은 문재인의 장단에 기꺼이 응해줬던 것이다.
김갑수 역사평론가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하여 결론 내렸다.


》노무현이 김대중을 배신한 이유

원본 출처: https://youtu.be/lcbFR8DllDk?si=kOe6sN6EUbWN5MeH, [Inshot]어플로 2차 가공하였습니다.


그리고 노무현의 이 같은 대북송금특검이 더더욱 기가 차는 이유는, 정작 2017년 기준 역대 대통령들 중 대북송금을 가장 많이 한 인물이 바로 노무현 본인이기 때문이다.
적반하장과 내로남불의 극치를 보여준 것.


》김대중 24억 7065만 달러 vs 노무현 43억 5632만 달러

원본 출처: http://love25.tistory.com/m/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