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한 글쓴이의 논평

전자책의 역습을 희망하며

성령의 오른말씀 2024. 8. 25. 15:26

'책'이란 글자를 보면 종이책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그들은 여전히 "책은 종이책으로 읽어야 손때가 묻어서 정이 더 가고, 다양한 색의 볼펜으로 직접 밑줄 그어가며 읽을 수 있어 밑줄 그은 내용이 머릿 속에 잘 들어온다"라고 주장한다.
누구나 흔히 들어봤을 법한 클리셰 아닌가?
그들이 말하는 손때란, 대체 무엇일까?
사실 글쓴이는 그 의미를 머리론 안다.
하지만 가슴으로 공감하고 싶진않다.
그래도 그 사전적 정의부터 굳이 설명하자면, 여기서 그들이 말하는 손때란, 오랫동안 쓰고 매만져서 길이 든 흔적(표준국어대사전 참조)을 말한다.
이제 한국사람들은 이 사전적 정의에 우리 민족 특유의 한(애착 내지는 집착)의 정서까지 더해지는 것이다.
즉, 자신이 오래 고이 쓴 물건에는 한까지 서려 있는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손때 묻은 종이책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런데 글쓴이는 전에 읽은 사람의 한이 서려있는 종이책은 빌려읽고 싶지도 않고, 본인의 한이 서려있는 책을 타인에게 빌려주고 싶지도 않을거같다.
어째서 저자의 의도가 독자의 감정에 의해 묻히거나 왜곡되어야 하는가?
이는 저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책에 꼭 손때가 묻어야 하는것일까?
우리가 어떤 작가의 책을 읽는 주된 목적은, 그 작가 특유의 문체 및 필력이 주는 아름다움과 그 작가 특유의 철학과 세계관이 인류사에 끼치는 영향력을 천착하는데에 있는것이 아닐까?
고작 손때나 묻히려고 책을 읽는 것인가?
아, 물론 이 글의 초반부에서 글쓴이는 종이책을 읽을 땐 밑줄을 색깔별로 그어가며 읽을 수도 있다는 견해 또한 언급했다.
하지만 요즘은 전자책을 읽을 때도, 밑줄을 긋고 싶은 내용에 밑줄을 색깔별로 예쁘게 그어가며 글을 읽는 것이 가능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인상 깊게 읽은 내용을 지정해서 메모를 남길 수도 있고,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그 즉시 사전기능을 이용해서 단어를 검색할 수도 있으며, 폰트 크키와 글자 굵기와 줄 간격과 여백과 들여쓰기와 문단 간격과 문단정렬 그리고 배경 색까지도 설정할 수 있다.
심지어는 저작권이 만료된 책 같은 경우엔, 자신이 공유하고 싶은 일부 내용을 이미지 또는 텍스트로 공유할 수 있어, 작가의 사상과 세계관을 타인에게 전파하기가 매우 용이하다.
글쓴이는 그렇게 흥미를 유발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해당 책을 읽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전자책의 가치를 폄하한다.
글쓴이가 존경하는 작가가 있는데, 그 작가는 과거 사업가 출신이었고 사상가이자 경제학자이자 정치인이었다.
그는 많은 책들을 집필하였다.
그런데 그가 집필한 어떤 책들은 절판됐기 때문에, 글쓴이가 종이책으로 구할 수 없는 책들도 있다.
종이책은 절판되어 글쓴이가 전자책으로 구매한 그의 책 속엔 유교사상의 고질적 문제, 그의 신앙적 고찰과 당시의 한국사회에 관한 통찰, 앞으로의 글로벌 역학관계, 동서양 철학자들에 관한 비평 등을 담고 있었다.
그 책 속에서 작가는 그만의 독특한 문체로 그만의 천재적인 세계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글쓴이는 도저히 감동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단순히 그 내용이 전자책 속에 담겨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작가의 천재성이 희석되거나 상실된다고 보는가?
그 작가가 본인의 영감과 아이디어로 직접 집필했는데도 불구하고?
천재적인 작가가 자신의 영혼을 갈아넣은 걸작품이 종이책으로 출간됐느냐, 전자책으로 출간됐느냐, 고작 그깟 문제 때문에 그 작품의 평가가 달라지는게 과연 작가로서의 직업윤리에 합당한 일일까?

종이박스(종이책)에 담겨있던 장난감(인간의 걸작품)유리상자(전자책)로 옮겨지면, 장난감(인간의 걸작품)이 아닌게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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