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세계관×정치사회

김대중의 정치 목적은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는 것?

성령의 오른말씀 2024. 9. 8. 13:07

원본사진 출처: https://naver.me/xwWi8INa, 모바일 편집어플 [Canva]를 활용해서 2차 가공하였습니다.


이전 포스팅에서도 글쓴이가 자세히 다뤘지만, 김대중은 아주 독실한 가톨릭신자지만 그 어느 기독교인들보다도 (구원론을 제외하고선)기독교인다운 신앙관을 지니고 있었다.
자세한 정보는 아래의 포스팅에서 참고하길 바란다.
https://the-fig-tree.tistory.com/m/20

가톨릭 신자인 김대중의 신앙관, 기독교인들이 보고 배워야

많은 사람들이 어렴풋이 알고는 있지만 간과하고 있거나, 심지어는 인지조차 못하고 있는 김대중에 관한 신상정보가 있다. 바로 그가 상당히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는 것이다. 그의 자서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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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일부 기독교 신자들은 가톨릭을 그저 이단으로 정죄하며 어느 가톨릭 신자와도 교류조차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위한 선의의 경쟁자로 두거나 반면교사의 롤모델조차로도 두지 않으려고 한다.
반면교사의 사전적 의미를 안다면, 일부 기독교인들의 편협함이 오히려 복음의 역사를 가로막고 있다는것을 알게 될 것이다.

cf.반면교사: 사람이나 사물 따위의 부정적인 면에서 얻는 깨달음이나 가르침을 주는 대상을 이르는 말.


그에 반해, 김대중은, 이전 포스팅에서도 설명했듯이,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비교적 포용적인 기독교인들과도 친분을 쌓았으며 기독교인인 이희호 여사와도 결혼했다.
그리고 김대중은 그 어떤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지켜냈으며, 현실 정치에 자신의 기독교 정신을 최대한 녹여내고자 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 비록 김대중이 가톨릭 신자긴 하지만, 그가 구원론을 제외하고선 성경적이므로 성경적 논리에 근거해서 구원론 외의 사안들에 관해서 다룰때는, 글쓴이는 그가 기독교 정신을 반영했다고 평가하기로 결정했다. 이 포스팅을 끝까지 정독하면, 교파나 자기 주관이 아닌 오직 성경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납득하게 되리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이는 글쓴이가 개인 소견으로 아무렇게나 내뱉는 주장이 아니다.
지금부터 김대중의 행적과 정책들 중엔 어떤 것들이 기독교 정신을 반영하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 흉악범도 하나님의 형상


글쓴이는 처음부터 세게 나가기로 했다.
김대중이 죽어서도 무수히 많은 의문과 비난의 중심에 있는 정책, 바로 사형제 폐지이다.
사실 김대중의 사형제 폐지는 기독교 정신 그 자체이다.
그렇기에 성경말씀을 온전히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정책을 이유로 그에게 의문을 제기하거나 그를 비난해선 안된다.
그렇다면 어째서 사형제 폐지가 기독교 정신 그 자체인걸까?
2007년 10월 10일에 열린 [사형폐지국가 선포식]에서 김대중이 했던 기조연설을 근거로 설명하도록 하겠다.
김대중은 자신의 기조연설에서 사형제를 폐지해야 하는 5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우리는 기조연설 내용 중에서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첫번째 이유에 주목해야한다.
https://m.breaknews.com/72448

[브레이크뉴스] <font color=996600>우리도 사형제 폐지국 선포식 `인권승리`

10월 10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는 사형을 폐지하는 `사형폐지 국가 선포식`이 있었다. 이날 김대중 전대통령 기조연설에서 `나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무렵 사형 확정자 52명을 전원 무기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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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성경적 세계관에선 우리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로 인해 전 인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분리(로마서 5:12), 죽음과 사망의 권세 아래에 놓이게 됨으로써 순식간에 하나님의 자녀들에서 진노의 자녀들로 위치가 격하되었다(에베소서 2:3).
하지만 전 인류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피조물(창세기 1:27)로서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요한복음 3:16, 요한일서 4:9)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상대가 아무리 흉악범죄자라고 해도, 한낱 인간인 우리가 상대의 생명을 함부로 앗아갈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흉악범죄자의 존재 근원조차도 하나님이고, 그도 하나님을 닮은 형상이기에 오직 하나님만이 그의 생명을 거둬갈 수 있다.




● 여성도 하나님의 형상


적어도 성인이라면, 김대중이 자타공인 페미니스트이고 논란의 여성부를 신설한 주범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글쓴이는 오늘날 부패와 비리의 온상이 되어버린 여성가족부가 김대중 정신엔 전혀 안중에도 없다는것을 확신하는 바이다.)
그런데 또 많은 사람들이 김대중의 페미니즘 조차도 기독교 정신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허나, 그 사실은 그의 자서전인 [옥중서신]을 통해 증명된다.
그는 그의 자서전을 통해서 여성인권신장이 예수님의 탄생과 불가분의 역사적 관계가 있다는것을 피력했다.
그 내용을 아래에 첨부하도록 하겠다.

3. 그리스도와 여권女權
나는 요즈음 만일 그리스도가 없었다면 오늘의 여성의 지위가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상상해봅니다. 그 당시는 모세의 율법의 공인을 받아서 일부다처는 물론 남자는 언제나 이혼증서만 써주면 아내를 내쫓아서 사실상 생활권을 박탈할 수 있었습니다. 성서를 보면 솔로몬왕은 후궁이 700이요 시녀가 300이었다고 하며 다윗왕조차 수많은 처첩을 거느렸습니다. 이런 일은 비단 유다뿐이 아닙니다. 이슬람 사회는 처 넷까지는 교리적 합법이며 모하마트 자신이 그런 생활을 했습니다. 유교사회나 불교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유불 양교의 이 나라에서는 일부다처가 허용됨은 물론 여자는 일생을 통해서 아버지와 남편과 아들의 지배를 받도록 윤리화되었으며 여자의 투기妬忌는 칠거지악七去之惡 속의 하나였습니다. 이와 같이 동서 어디서나 여자는 남자의 노리개요 소유물이요 가지가지의 차별과 압박 속에서 고통당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는 감연敢然히 그리고 위험천만하게도 모세의 율법을 폐기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누구든지 아내를 버릴 수 없고 자기 아내를 두고 다시 여자를 더 거느릴 수 없다는 것을 선언했습니다. 이 놀라운 그리고 그 당시 남자의 자유와 상식을 뒤엎는 예수의 주장에는 그의 제자조차 ‘그렇다면 차라리 장가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항의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수의 대결단의 덕으로 서구의 모든 기독교 사회에서 일부일처제가 확립되었고 이제는 비신자조차 그것을 당연한 사리事理로 받아들였습니다.
요즈음 여권이 신장되고 여성의 경제적 지위도 높아져서 오히려 여성이 이혼의 자유를 주장하며, 이태리 같은 나라는 이것이 큰 정치와 사회의 문제로 되어 있지만 예수님 당시는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는 전무 상태였으며 따라서 이혼을 당한다는 것은 그 생활 자체의 완전 파멸을 뜻했던 것입니다. 일부일처, 이혼의 금지는 역사적으로 볼 때 여성의 인권수호와 신장을 가져온 최대 원인이었으며 이 점에 있어서 기독교의 공헌은 참으로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성탄절에 즈음하여 세계의 모든 여성들은 기독교를 믿건 안 믿건 예수님의 탄생이 오늘의 그들의 놀랄 만큼 신장된 여권과 얼마나 불가분의 역사적 관계가 있는가 생각해봄직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알라딘 eBook <옥중서신 1> (김대중 지음) 중 p.82~84에서

김대중은 예수님께서 모세의 율법을 폐기함으로써 오늘날 서구의 모든 기독교사회에서 일부일처제가 확립됐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대중은, 일부일처제와 더불어서, 그 당시에 예수님께서 남자의 (일방적인)이혼을 금지함으로써 여성의 인권수호와 신장을 가져왔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구상에서 여성인권이 가장 발달한 국가는 유교 국가도 아니요, 이슬람 국가도 아니요, 힌두교 국가도 아니요, 바로 서구의 기독교 국가들이다.
글쓴이는 기독교 신자로서 환생을 믿지 않지만, 만약에 환생할 수 있다면, 서구의 백인여성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을 지경이다.
그럼에도 참 아이러니한건, 작금의 페미니스트들이 기독교를 저주하고 배척하고 있으며, 서구의 백인여성들은 문화상대주의를 외치면서 이슬람국가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것이다.
왜 그들은 기독교에 배타적이고, 이슬람교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
그 이유는 그들이 단단히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기독교가 소수자성에 배타적이고 소수자성을 차별하고 있는 남성우월주의적 종교인데, 이슬람교가 소수자성에 속하는 약자들의 종교라는 것이다.
이슬람교에 우호적 태도를 보이게 하는, 그와 같은 이유(기독교가 강자고, 이슬람교가 약자라는 오해 말이다.)의 원인은 다음과 같다.
기독교를 믿는 국가들이 주로 선진 서구열강들이며 백인들이 주류인 사회로 이루어져 있는 반면에, 이슬람교를 믿는 국가들은 소위 제 3세계에 속하며 아랍인과 인도네시아인과 방글라데시아인과 인도인 등 유색인종이 주류인 사회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출처: 지식백과, 중동의 재조명).
더군다나 기독교의 성경말씀은 2013년 9월 기준 2,800개 언어로 번역되었기에 사람들이 각자에게 특별히 와닿는(이지만 '유난히 불편한'이라고 읽으세요.) 성경말씀의 특정 구절들에 관해서는 오체분시 하듯이 조목조목 따지고 기독교에 페미니즘이라는 정죄의 칼날을 들이대는 반면에, 이슬람교의 쿠란경전은 고작 수백 개의 언어로 번역된 덕분에 성경말씀에 비해 훨씬 덜 대중화되어서 세상 이념의 잣대를 피해가기가 굉장히 수월하다.
그러니 오늘날 PC주의로 점철된 페미니스트들은 기독교에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성경의 진리를 깊이 고찰하고 이슬람교의 실상을 알게 된다면, 그들은 당장이라도 예수님께 석고대죄하고 싶어질 것이며 이번에도 김대중의 통찰이 옳았다는 것에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될 것이다.
김대중도 여성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피조물(창세기 1:27)이란걸 알았기에 위와 같은 글을 쓸 수 있었다는걸 명심했으면 좋겠다.




● 정적들을 향한 용서와 화해


김대중은 그의 임기 내내 용서와 화해의 정치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알만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기독교에서 원수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지 않는가?
다음은 마태복음 5장 43~48절 말씀이다.

마태복음(마) 5장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글쓴이는 48절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데,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명령하신 이유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하나님의 온전하심이다.
영어성경에는 이 온전하심이 'perfect'로 쓰여있다.
우리는 보통 흠없이 일처리 하는 사람에게 완벽주의자라고 칭한다.
그런데 만일 어떤 사람이 카페 종업원이 자신이 보기에 선한 손님은 응대하고 진상 손님은 문전박대한다면, 우리가 그 카페 종업원을 두고 프로의식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 카페 종업원의 정신상태가 과연 "온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 카페 사장님이 지게 될 막대한 손실은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보겠다.
해는 하나님 자신께서 직접 만드신 자연의 법칙에 의해서 뜨고 지고, 악인과 선인에게 공평하게 비춘다.
그런데 하나님이 감정적인 분이라서 자신이 직접 만드신 자연법칙까지 어겨가며 선인에겐 해를 비추고 악인에겐 해를 비추지 않으신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정말 혼돈의 카오스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정치 보복도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단언컨대, 김대중은 일찍이 마태복음 5장 43~48절 말씀에 담긴 깊은 이치를 꿰뚫어보고서 몸소 실천한 인물이었던 것.
그렇기에 그는 자신을 납치해서 암살하려고 했던 박정희도 용서할 수 있었으며, 박정희의 산업화 공로도 공개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대담함 또한 지닐 수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김대중은 박정희 기념관을 건립하는데에 무려 208억이라는 예산을 책정하여 지원하기 시작했다.
훗날 노무현 정권 시절에 지원이 중단되었다.(자세한 정보는 아래 참조)
https://naver.me/IgJ4V51C

박정희기념 · 도서관

박정희 전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서울 상암동에 건립한 기념관 성격의 도서관. 서울시 마포구 박정희기념 · 도서관은 박정희기념사업회에서 박 전 대통령의 뜻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도서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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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출처: https://www.mule.co.kr/m/politics/56529964
원본출처: tv조선의 정치예능프로 [강적들]

이것이 일회성으로 끝난 일이었다면, 요즘같이 누군가의 선행이 하나의 쇼처럼 소비되는 세상 속에서 김대중이란 인물에 매료되기란 일반 사람들에겐 쉽지 않다.
김영삼 정권 당시에 김대중, 그는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했었던 전두환을 사면해줄 것을 김영삼에게 요청함으로써 자신의 기독교적 신념을 다시 한번 더 드러내었다.
https://naver.me/Fn2qWOI2

[fn사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왜 전두환을 사면했을까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69)가 새해 벽두에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이슈를 꺼냈다. 이 대표는 1일 언론과 인터뷰에서 "적절한 시기에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면을 건의하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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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그는 기독교 정신의 용서와 화해가 진정 무엇인가를 자신의 삶 전체를 통틀어서 만천하에 보여줬던 것이다.




이런데도 김대중이 단지 가톨릭 신자라는 이유만으로 우리 기독교인들이 감히 그의 믿음과 종교적 신념을 쉽게 정죄하며 배척할 수 있을까?
글쓴이가 판단하기로는, 김대중은 세속에 찌든 보통의 기독교인들과는 달리 기독교 정신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으며 자신의 삶을 통해서 "예수님을 닮은 사람의 삶이란 이런것이다"란걸 보여줬었던 인물이다.
글쓴이는 지금 이 순간 김대중의 표현을 빌려서 한가지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1980년대 초반, 그 서퍼런 군부독재 시대에 과연 한국인들 중 상당수가 증오, 보복, 곡해, 중상 등 조선왕조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적 악의 유산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을까?
그런데 그 와중에 김대중은 안락한 집에서 하루에 뜨뜻한 밥 3끼 먹으면서 자고싶을 때 자고, 쉬고 싶을 때 쉬고, 만나고 싶은 사람 언제든 만나가면서 이런 글을 썼던 것이 아니다.
그 누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는 쉬지않고 성경을 묵상하고 다독하며 기독교 정신을 설파하고, 용서와 화해를 외쳤던 것이다.
물론 초월적인 경지의 예술이나 정신이 반드시 배고픔과 고난 그리고 시련에 결부되는 것은 아니다.
글쓴이는 그런 헝그리정신이야말로 불행포르노에 속한다고 생각하고, 김대중의 불행을 감동과 재미 요소로 소비할 정도로 변태 성향도 아니며 생계 수단으로 이용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그저 글쓴이의 생각은 열악한 환경과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자신의 종교적 신념과 양심을 지키고 정도를 걸은 김대중의 그 뚝심과 초월적 경지를 필히 인정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타인이 김대중처럼 되도록 김대중과 똑같은 불행을 안겨줘야 하는게 아니라, 그 불행을 이겨낸 김대중의 공로와 업적을 인정해줘야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김대중의 기독교 정신과 용서와 화해만 흡수해서 발전시키면 된다.
특히, 이 포스팅을 통해 우리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삶을 다시 되돌아보고, 김대중이란 인물에 대해서 깊게 통찰해보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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