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의 조선왕조 정치 비판: 유교의 문제점 지적

오늘날 유교가 여전히 많은 한국인들의 의식과 생활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유교문화를 비판하는 이들조차 그것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분석하지 않고, 그 문화를 관성적으로 따르고 있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 김대중은 이미 자신의 자서전인 [옥중서신]에서 유교사상을 객관적으로 분석했으며, 그 문제점과 정치ㆍ사회적인 영향에 대해서 자세히 다뤘다.
본 포스팅에선 김대중의 자서전 내용 중 일부를 살펴보면서, 그 사상이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사상을 근간으로 한 조선왕조의 정치는 어떠했고, 더 나아가 그 사상이 동아시아 국가의 산업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 하나 하나씩 짚어 나가도록 하겠다.
1. 조선왕조의 유교정치, 편협성과 불관용
그 첫째는 우리나라의 정치가, 너무도 편협하고 관용성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조선왕조의 유교정치가 그랬습니다. 유교는 민족 전래의 종교인 불교를 유린하고 구국의 신흥종교라 할 동학을 짓밟았습니다. 또 우리의 근대화에 결정적 역할을 한 천주교도에 대한 모진 탄압이 100년에 걸쳐서 1만 명에 달하는 교인을 학살하면서 강행됐습니다. 그뿐 아니라 같은 유교 안에서도 주자학 이외에는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금압禁壓하고 나아가 같은 주자학끼리도 사소한 예송禮訟문제 따위로 남인, 북인, 노론, 소론의 소위 사색당쟁으로 갈려서 피로 피를 씻는 보복전을 나라가 망하는 그날까지 자행했습니다.
-알라딘 eBook, 김대중의 <옥중서신 1> 중 p.342
김대중은 조선왕조가 불교와 동학을 배척하고, 더 나아가 근 100년 동안 약 1만 명의 천주교 신자들을 학살함으로써, 유교정치의 편협성과 불관용을 여실히 드러내 보였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내부적으로도 편가르기가 심하여 주류인 주자학 이외의 해석을 사문난적으로 몰아갔다.
* 사문난적: 주자적 유교(儒敎)에 대한 교리를 다르게 해석했던 선비를 비난하기 위해 사용한 말. 원래 유교 반대자를 비난하는 말이었으나 조선 중엽 이후 당쟁이 격렬해지면서부터 그 뜻이 매우 배타적(排他的)이 되어 유교의 교리 자체를 반대하지 않더라도 그 교리의 해석을 주자(朱子)의 방법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사문난적으로 몰았는데 송시열이 윤휴를 사문난적으로 몰았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는 경전 원본보다 주자가 내린 해석을 더욱 중시하고 맹목적으로 따랐던 경직된 조선 중기의 사상을 보여준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여기서 김대중은 천주교가 비록 외래종교지만, 우리나라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사실을 확실히 짚고 넘어갔다.
위 자서전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김대중은 특정 종교를 탄압하는걸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1980년대에, 그는 이미 어떤 종교를 믿을지 선택할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것을 간접적으로 설파했다.
그러나 21세기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들 중 상당수는 여전히 자신과 종교관이 다르다는 이유로 친분조차 쌓지 않으려고 하거나, 오늘날의 글로벌 시대에 단순히 서방의 종교라는 이유로 기독교와 천주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곤 한다.
전자의 특성은 주로 무신론자들과 한국 개신교인들에게서 보여지고 있고, 후자의 특성은 주로 유교 신봉자들에게서 보여지고 있다.
2. 유교도덕은 민주ㆍ산업사회와는 공생불가
그러나 유교도덕으로는 원칙적으로 우리가 되돌아갈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유교도덕은 봉건도덕이며 따라서 인권부재의 도덕인데 민주주의와 산업사회를 지향하는 마당에 어찌 이를 따를 것입니까? (중략)
1) 유교도덕의 충효는 ‘군君이 군답지 않더라도 신臣은 신다워야 한다’ ‘부모가 부모답지 않아도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것이 기본입니다. 이것은 개인의 인격의 존엄성과 사회계약적 사상을 토대로 한 민주사회의 도덕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의 충효는 ‘정부도 정부다워야 하고 국민도 국민다워야 한다’ ‘부모도 부모다워야 하고 자식도 자식다워야 한다’는 상호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라야 합니다.
2) 유교도덕의 또 하나의 큰 기둥은 질서입니다. 젊은이는 윗사람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장유유서長幼有序,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질투하거나 자식 못 낳거나 하면 쫓아내는 칠거지악七去之惡까지 용납하던 남편 절대우위의 부부유별夫婦有別을 위시로 한 남존여비男尊女卑, 관존민비官尊民卑, 관료주의官僚主義, 형식주의形式主義 그리고 반상班常의 차별 같은 신분주의身分主義, 이런 것이 봉건도덕인 유교도덕의 골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유교도덕의 재존중을 말하는 사람 중 상당수는 유교도덕과 우리 민족 고유의 도덕을 혼동한 예가 많습니다. 이 점을 분명하게 구별하지 않으면 우리는 조선왕조 500년 동안 가장 참혹하게 국민을 짓밟은 그리고 마침내 망국에까지 이른 유교도덕의 잔재를 털어버리는 매우 중요한 현재적 과업을 등한히하게 되고, 유교도덕 이전에는 우리 민족에게 도덕다운 도덕이 없이 야만이었던 것 같은, 자기 역사에 대한 무지와 모멸을 갖게 됩니다.
-알라딘 eBook, 김대중의 <옥중서신 1> 중 p.397~399
김대중은 유교를 봉건도덕이자 인권부재의 도덕이라고 정의하면서, 민주주의와 산업사회(자본주의)와는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가 이같이 주장한 이유는, 민주사회는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유교는 임금(정부)과 기득권 세력과 윗사람 그리고 남성에게 일방적으로 복종할 것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을 가질 수 밖에 없는것이다.
장유유서, 칠거지악, 남편 절대우위의 부부유별에서 비롯된 남존여비, 관존민비, 관료주의, 형식주의, 반상차별 같은 신분주의 등등...
*관존민비: 관료를 높이 보고 백성을 낮추어 보는 절대주의시대 민중의 정치의식. 그러나 서구에서는 근대사회의 형성과 더불어 군주를 정점으로 하는 일원적인 가치체계가 붕괴되고, 이에 따라 관료는 군주의 봉사자(royal servant)에서 국민의 봉사자, 즉 공복(公僕:public servant)의 뜻으로 바뀌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관존민비의 사상이 뿌리깊이 잔존하고 있어서 폐습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 관료주의: 상급자에게는 약하고 하급자에게는 힘을 내세우려 하며, 자기 업무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 책임은 지지 않으려 하면서도 독선적인 행동이나 의식을 보이는 따위의 특성을 이른다.(출처: 네이버 어학사전)
* 반상차별: 양반과 상사람으로 구분하여 차별하는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런 문제점들이 버젓이 존재하는 유교도덕을 재존중하자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조선왕조 시대로 회귀하자는 것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김대중은 "유교도덕이 있기 전에는, 우리 민족은 도덕도 없는 야만인이었는가"라며 허를 찌르는 반문을 던졌다.
(놀랍게도, 이는 내가 그동안 줄곧 "자본주의가 도입되기 전에는 여성의 인권이 보장되었단 말인가"라고 던졌던 반문과 일맥상통하는 논리이다.)
그러면서 399 쪽부터, 그는 우리 민족의 고유의 도덕에 대해서 다뤘다.
3. 새로운 도덕의 필요성
어느 시대에나 도덕의 위기는 있습니다. 특히 오늘과 같은 인류 역사상 초유의 격변기에는 도덕은 바닥부터 흔들리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반드시 복고주의가 나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장하는 어린아이에게 갓난아이 때의 옷을 끼워 입히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일이고 해로운 일입니다. 특히 외래 도덕이 밀어닥치는 오늘 같은 시대에는 더욱 황당합니다. (중략) 우리가 나아갈 도덕적 방향은 우리의 정치·경제·사회의 방향과 일치해야 합니다. (중략) 우리가 나아갈 길은 민주주의요, 사회정의요, 경제발전이요, 국가안전이요, 조국의 통일입니다. 우리의 사회도덕이 이러한 국가목적과 일치할 때 개인도 의욕과 보람과 희망을 가지고 도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중략) 전통 도덕의 취사 선택, 새로운 도덕의 창조적 추진은 어디까지나 광범한 국민의 토론과 참여 속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알라딘 eBook, 김대중의 <옥중서신 1> 중 p.402, 405~406
여기서 김대중은 다시 한번 더 강조하기를, 유교도덕에로의 완전한 복고는 마치 성장하는 어린아이에게 갓난아기 때 입었던 옷을 끼워 입히려는 것과 같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같은 발상은 외래 도덕이 밀어닥치는 글로벌 시대에 어리석고 해롭고 황당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정의, 경제발전(산업화), 국가안전(안보), 조국의 통일을 전제로 한 새로운 도덕을 창조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물론 그는 전통도덕을 아예 배척하자는 것이 아니라, 전통도덕의 장점들을 취사 선택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그보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그가 새로운 도덕의 방향성으로 경제발전과 국가안전을 언급했다는것이다.
글쓴이는 한국의 우파들에게 묻고싶다.
김대중이 진정으로 산업화와 안보를 등한시했던 종북 빨갱이인가?
4. 조선왕조의 대화와 용서 부재
조선왕조 지배상의 정신구조는 놀라울 정도의 폐쇄성으로 일관했습니다. 즉 그들은 건국하자마자 첫째, 정신적으로 완전한 배타주의의 길을 질주하더니 망국의 그날까지 계속했습니다. 고려시대의 유·불 공존체제를 뒤엎고 철저한 불교 탄압으로 나섰고, 유교 내부에서도 주자학 외에는 양명학도, 청국의 실증 유학도 모두 배격했습니다. 심지어 주자학 내부에서도 글자 하나만 잘못 써도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보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천주교나 동학은 용인할 수 없는 정신풍토였습니다.
둘째, 처음에는 양반과 상민의 관계를 가혹하게 가르더니 나중에는 자기들 양반까지 동, 서로 가르고 급기야는 노론, 소론, 남인, 북인의 사색으로 갈라서 살육과 추방을 되풀이하는 투쟁을 망국의 그날까지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서로 일체의 사교적 접촉이나 통혼을 끊었으며 관혼상제의 애경방문哀慶訪問조차 하지 않는 정도였습니다.
셋째, 조선왕조 지배층은 처음에는 서북사람을 정권 참여에서 제거하더니, 그 다음 정여립鄭汝立의 난 이후에는 호남사람을 제거하고, 영남과 기호사람끼리 피투성이의 지역 싸움을 했는데, 작고한 본인들의 뜻에 반하여 전자는 주로 이퇴계를, 후자는 주로 이율곡을 추앙하면서 서로 상대방의 추앙인물을 헐뜯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안동 김씨, 풍양 조씨, 여흥 민씨의 세 외척의 세도시대로 들어서니까 이번에는 다시 좁혀서 서울 사대문 안 사람만이 정권을 농단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철저한 배타였고 철저한 자기 폐쇄의 작태였습니다. 이것이 망국의 길이요, 국민 전체의 정신과 문화와 생활에 미치는 악영향은 말할 것도 없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가혹한 자기 형벌을 그들은 500년이나 가해온 것입니다. 대화도 없고 관용도 없고 공존도 없는 삭막하고 황량한 정신풍토를 그들은 형성하고, 그 안에 마치 조개같이 파묻혀 증오와 불신과 음모의 세월을 보냈던 것입니다. (중략)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불행의 현상이 있다면 이러한 조선왕조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적 악의 유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점일 것입니다.
관용, 공존, 이해, 협력의 기풍 대신 증오, 보복, 곡해, 중상 등의 기풍이 판친다면 다른 어떤 것이 건설되고 발전되더라도 희망이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그런데 전자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후자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어간 최대 원인은 상호 이해의 부족에서 오는 수가 태반이며, 이해의 결핍은 대화의 부재에서 옵니다. 우리가 가정해서 조선왕조 시대에 유교와 불교 사이에 흉금을 털어놓는 대화가 있었다면, 천주교와 동학에 대한 유교나 정부의 대화가 행해져서 그 본질을 바르게 이해했더라면, 그리고 아울러 서구 사정이나 민중의 기막힌 사정이 통달되었더라면 얼마나 우리가 달라졌을까요? 양반과 상민 간에 대화가 행해지고 도별 지역 차이 없이 정권에 참여하고 당파 간에 대화가 행해졌더라면 저 피비린내나는 당파 싸움이나 민중의 반란이 없었을 것이며, 우리의 정치와 국운은 지금 우리가 역사책에서 본 것과 정반대의 광명의 길을 걸었을 것입니다. (중략) 사랑하려면 먼저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하려면 상대의 처지와 심정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하려면 상대방의 처지와 심정을 알기 위한 대화가 필요합니다. 대화도 이해도 없는 가운데 곡해와 무지가 쌓여 있으면 용서도 사랑도 있기 어렵습니다.
-알라딘 eBook, 김대중의 <옥중서신 1> 중 p.420~423
김대중이 지적한대로, 조선왕조의 유교정치는 갈수록 편가르기가 일색했고, 그 과정에서 증오, 보복, 곡해, 중상 등이 판을 치게 되었다.
* 중상: 근거 없는 말로 남을 헐뜯어 명예나 지위를 손상함.(출처: 네이버 어학사전)
비주류 종교를 향한 탄압, 주류 학문인 주자학의 양명학과 실증 유학 배격, 양반들의 상민들을 향한 천시, 더 나아가서는 같은 양반들끼리의 사색당쟁까지 생겨났다.
이게 끝이 아니다.
조선왕조의 유교정치는 지역 편 가르기로까지 치닫게 되었다.
조선왕조의 지배층은 처음엔 서북 사람들을 정계에서 제거하더니, 정여립의 난 이후엔 호남사람들을 제거했다.
그 후엔 또 영남세력과 기호세력으로 나뉘어 서로 상대 세력의 추앙인물을 헐뜯기 바빴다.
여기서 김대중이 확실히 짚고 넘어갔던 것이, 그들 각자가 추앙하는 인물의 뜻에 반하여 그런 작태를 보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김대중을 존경한다는 정치인들도 그의 뜻에 반하여 반일반미 감정을 조장하고 공산주의 사상을 퍼뜨리고 있지 않은가?
만약에 김대중이 다시 살아돌아와 이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면, 그의 심정이 과연 어떨까?
예나 지금이나 정치인들은 특정 어떤 인물을 존경한다곤 하나, 실상은 자신의 이득과 기득권을 위해서 그 인물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 뿐이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와, 김대중이 지적하기를, 조선왕조 말기는 외척의 세도정치 시대로서 서울 사대문 안 사람 만이 정권을 잡을 수 있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조선왕조 때의 이런 사례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경고했다.
지금이라도 우리들이 대화를 통한 상호이해와 용서를 통한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조선왕조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적 악의 유산에서 헤어나올 수 없으며, 그런 고로 다른 그 어떤 것이 건설되고 발전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앞날엔 희망이 없다는 것을.
5. 유교가 생활 전체를 지배하는 나라는 발전이 없다.
홍일이의 편지에 아시아의 수출 5대국이 일본, 대만, 홍콩, 중공, 한국이라고 발표되었다는 것이 적혀 있습니다. 일견해서 알 수 있다시피 이 다섯 나라는 모두 유교권에 속한 나라입니다. 이미 내가 밖에 있을 때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70년대에 중진국으로 등장한 나라는 싱가포르를 포함해서 주로 유교권의 국가들입니다. (중략)
왜 유교권 국가들이 다른 종교권보다 앞서 발전해나가고 있을까 하는 이유를 나 나름대로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 유교가 갖는 합리주의, 현실성, 비종교성 등이 근대적 산업체 계와 기술을 큰 고통이나 저항 없이 받아들일 정신적 소지를 이루었다고 보입니다.
둘째, 유교의 고도의 질서의식과 제도가 군대와 같은 규율과 질서를 요구하는 근대산업에 합치되어 성과를 올리게 했다고 보입니다. 셋째, 유교의 특징인 고도의 윤리성과 대가족주의가 양심적 협력과 가족적 단합을 기업 내에 가져온 면이 있었을 것입니다.
넷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유교는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철학이자 지식인데 이러한 지식은 과거제도로 해서 더욱 크게 보급되었습니다. 이러한 높은 교육수준이 서구문명과 산업제도를 아주 효과적으로 받아들이는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교에서 보는 것은 반드시 장점만은 아닙니다. 그 폐단인 관존민비, 관료주의적 복잡성과 부패, 신분차별주의, 노동 천시, 무위도식의 상습(양반계급), 억압적 가부장제 등 문제점도 허다합니다. 일본이 그러한 폐단에도 불구하고 이미 고도산업국가로 성공하지 않았느냐 할 수도 있지만 일본을 순수한 유교국가로 보기에는 우리나 중국과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일본에는 가마쿠라 막부(1192년) 이래 명치유신(1868년)까지 근 700년간 무인정치武人政治가 행해졌으며, 유교는 도쿠가와 막부 이래 무인들의 교양과 행정의 필요에 의해서 습득한 것으로 유교가 일본인의 전체생활을 지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외에도 무사도, 신도, 불교 그리고 나가사키를 통해 들어오는 난학蘭學이라는 이름 아래의 서구학문 등 다양한 영향을 정신과 사회, 경제 각 분야에서 받은 것입니다.
-알라딘 eBook, 김대중의 <옥중서신 1> 중 p.588~590
김대중은 유교사상을 무조건적으로 비난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아시아의 수출 5대국으로 일본, 대만, 홍콩, 중공, 그리고 한국이 선정된 것을 두고서, 이는 유교사상 덕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그 이유로서 그 사상 특유의 합리주의, 현실성, 비종교성, 고도의 질서의식과 제도, 고도의 윤리성, 대가족주의에 기반한 양심적 협력과 가족적 단합, 그리고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고자 하는 철학과 지식을 바탕으로 한 높은 교육 수준을 거론했다.
이처럼 그는 무엇이든지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중용적인 태도와 객관적인 관점으로 유교 사상을 분석하고자 했을 뿐이다.
단지, 합리적으로 따져봤을 때, 그러한 사상으로의 완전한 복고는 시대적 흐름(글로벌 시대)과 민주ㆍ산업사회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위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그는 위 내용에선 유교의 장점들을 나열했지만, 반전의 내용을 암시하는 동시에 강조하는 "그러나"라는 접속사를 쓰면서, 앞서 이미 제기했던 그것의 치명적인 단점들을 다시 한번 더 거론했다.
그러면서 그는 <유교가 일본인의 전체 생활을 지배하지 않은 것>과 <일본이 서구학문을 정신, 사회, 경제 등 각 분야에서 받아들인 것>을 예시로 들면서, 일본이 순수한 유교국가가 아니었기에 고도의 산업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김대중은 일본인들을 향한 감정을 내려놓고서 그들을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그들의 장점을 인정해주었다.
본 포스팅에선 김대중의 자서전인 [옥중서신]의 내용 중 일부를 인용하면서, 유교의 장단점, 유교도덕과 민주ㆍ산업사회의 부적합성, 새로운 도덕의 필요성, 조선왕조의 유교정치로 인한 폐단, 그리고 유교와 난학(서구학문)의 취사선택을 통한 일본의 고도산업성장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우리 선조들은 '전통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편협하고 불관용적이고 차별적인 악습 마저 답습했고, 외국의 종교와 학문을 합리적으로 따져보지도 않고 무작정 탄압하였다.
그리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지금도 우리는 글로벌 시대와 민주ㆍ산업사회에 부적합하고 비효율적인 유교문화를 고집하고 있다.
허나, 김대중은 이미 약 40년 전에 그것의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간파하고 있었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방해가 되는 전통사상과 전통문화를 과감히 버릴 줄도 아는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시대적 흐름에 맞는 새로운 도덕을 창조적으로 추진하는것에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걸까?
막말로 부모님의 장례식에 장손만 상주로 서지않고 자식들이 모두 상주로 선다고 해도, 세상에 종말이 닥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반면, 편협하고 차별적인 형식을 고집함으로써 나머지 자식들을 존중하지 않는 건 장손을 향한 시기질투를 유발할 수 있다.
부디 편협하고 차별적인 도덕과 문화를 뿌리뽑고, 시대적 흐름에 맞는 새로운 도덕과 문화를 정착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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